# 통제사회, 마르크스, 말년의 들뢰즈가 남긴 미래 문제 1990년의 「통제사회에 관한 후기」는 푸코의 규율사회 분석을 이어받으면서도, 권력이 더 이상 주로 폐쇄된 기관과 고정된 규범을 통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 짧은 글이다. 이 글을 말년의 마르크스 관심, 네그리와의 대담,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창조와 “도래할 민중” 문제와 함께 읽으면 들뢰즈가 미래를 낙관적 청사진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선명해진다. ## 규율사회에서 통제사회로 규율사회의 전형적 공간은 가족, 학교, 병영, 공장, 병원, 감옥처럼 경계가 뚜렷한 기관이다. 사람은 한 폐쇄공간에서 다른 폐쇄공간으로 이동하고, 각 기관은 학생·군인·노동자·환자 같은 비교적 안정된 위치를 부여한다. 들뢰즈는 이 방식을 주형에 비유한다. 주형은 사람을 일정한 형태로 찍는다. 통제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주형보다 변조다. 변조는 한 번 형태를 정하는 대신 계속 값을 바꾼다. 성과급, 지속적 평가, 평생교육, 기업 내부 경쟁처럼 사람은 한 기관을 통과한 뒤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측정되고 다음 조건으로 조정된다. ## 개인에서 dividual로 통제사회에서 인간은 하나의 나눌 수 없는 개인으로만 다뤄지지 않는다. 여러 데이터 조각과 점수, 접근 자격, 시장 세그먼트로 분할될 수 있다. 들뢰즈가 individual을 비틀어 dividual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다. 이 변화에서는 “당신은 누구인가”보다 “지금 이 행동을 허용할 것인가”, “이 사람의 위험도는 얼마인가”, “어떤 가격과 추천을 보여 줄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하나의 일관된 자아를 완성해서 재현하지 않아도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 1990년 당시에는 스마트폰이나 오늘날의 추천 알고리즘이 없었지만, 코드·접근권·지속적 평가라는 방향은 이후 디지털 환경을 분석하는 강한 개념적 자원이 되었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모든 데이터 기술이 이 글에서 예언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 기업, 마케팅, 빚진 인간 「통제사회에 관한 후기」는 공장보다 기업, 생산만큼 판매와 시장, 고정 임금보다 경쟁적 성과평가가 중요해지는 자본주의를 본다. 특히 마케팅을 사회적 통제의 도구로 부르고, 현대 인간을 “갇힌 인간”보다 “빚진 인간”으로 묘사한다. 이 표현의 핵심은 감금이 사라진 뒤 자유가 자동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물리적으로 이동할 자유가 있어도 대출, 신용, 경력, 성과, 보험, 교육과 미래소득의 조건을 통해 계속 현재의 선택을 조정받을 수 있다. 권력은 “이 일을 하라”고 직접 명령하기보다 가능한 미래의 범위를 조절할 수 있다. ## 자본주의가 비재현적으로 변한 역설 『차이와 반복』의 언어만 보면 재현에서 벗어나 유동성과 차이를 긍정하는 것이 해방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말년의 들뢰즈는 자본주의 자체가 고정된 코드와 경계를 해체하고 흐름과 차이를 이용하는 데 능숙하다는 문제를 마주한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사람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하지 않아도 된다. 매 순간의 행동 데이터를 이용해 추천, 가격, 노출, 접근권을 변조하면 된다. 유연성, 개인화, 네트워크, 이동성은 통제와 양립한다. 따라서 “재현을 해체하면 자유가 온다”는 단순한 도식은 유지되기 어렵다. 질문은 흐르게 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보다 누가 흐름을 측정하고, 누가 그 변화를 포획하며, 어떤 배치가 사람의 능력을 늘리고 어떤 배치가 그것을 약화시키는가로 이동한다. ## 『마르크스의 위대함』이라는 미완성 기획 들뢰즈는 말년에 자신을 “완전히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느낀다고 말했고, 「통제사회」의 문제도 마르크스적이라고 규정했다. 다음이자 마지막 책의 제목으로 『마르크스의 위대함』을 언급했지만 책은 완성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발언에서 분명한 관심은 세계시장과 자본주의의 변형이었다. 따라서 이 미완성 책을 사회주의 청사진으로 상상하기보다, 자본주의가 낡은 코드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포획과 통제를 만드는 방식을 더 밀어붙였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편이 현재 남은 자료와 잘 맞는다. 다만 실제 원고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구체적 목차나 논지를 복원할 수는 없다. “들뢰즈가 쓰려던 마지막 책의 내용”을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금물이다. ## 말년의 미래관: “아마도, 나는 모른다” 네그리가 통제사회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새로운 공산주의적 조직이 가능한지 묻자 들뢰즈는 완성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모른다”는 식의 답은 말년의 태도를 잘 보여 준다. 이것은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청사진을 미리 완성하는 데 대한 거부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어떤 최종 체제가 역사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이 아니라, 현재의 통제 안에서도 새로운 관계와 시공간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가이다. ## 혁명적 생성 들뢰즈는 혁명이 역사적으로 어떤 국가와 제도로 귀결되는가와 사람들이 “혁명적으로 생성하는 것”을 구별한다. 혁명적 사건이 이후 실패하거나 억압적 체제로 굳었다고 해서 그 순간 새롭게 생긴 집합적 능력과 관계가 처음부터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반대로 생성의 강렬함이 좋은 제도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생성과 역사적 귀결 사이의 간극을 유지하는 것이 들뢰즈의 비목적론적 정치관의 한 특징이다. ## 비소통의 공백과 회로 차단기 말년의 대담에서 들뢰즈는 소통 자체를 자동으로 해방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말과 정보가 이미 시장과 통제의 회로에 들어가 있다면 더 많은 소통은 더 많은 자유와 같지 않을 수 있다. 그가 “비소통의 공백”이나 “회로 차단기”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모든 행동과 관계가 즉시 데이터·가치·평가로 환산되는 흐름에 틈을 만들 필요를 가리킨다. 이것은 단순한 고립주의라기보다 계산과 즉시 반응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시간을 확보하는 문제로 읽을 수 있다. ## 세계를 믿는다는 것 말년 들뢰즈의 가장 강한 희망의 언어는 “세계를 믿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역사적 낙관론이 아니라, 통제와 포획이 강해져도 이 세계 안에서 아직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신뢰에 가깝다. 역사가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보증은 없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규모에서라도 통제를 빠져나가는 사건과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정치의 출발점이 된다. ## 도래할 민중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도래할 민중”도 완성된 미래 국가의 국민을 뜻하지 않는다. 아직 하나의 정체성으로 대표될 수 없고, 새로운 삶과 감각의 형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집합적 주체에 가깝다. 이 개념은 예술과 철학이 이미 존재하는 대중의 취향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직 정착되지 않은 감각과 삶의 형식을 먼저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 들뢰즈적 사회라는 말의 역설 사회 전체가 “들뢰즈적 원리”를 채택하면 해방될 것이라는 생각은 말년의 문제의식과 충돌할 수 있다. 유연성, 다양성, 네트워크, 개인화, 자율적 노동 같은 단어는 국가와 기업의 새로운 통제 언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들뢰즈적인 미래는 하나의 Deleuzian society를 완성하는 것보다 어떤 제도 안에서도 아직 포획되지 않은 새로운 삶의 형식이 발생할 여지를 지키는 쪽에 가깝다. 좋은 제도 역시 굳고 포획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문제와 배치를 계속 다시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 2026년에 남는 질문 「통제사회」는 강력한 나침반이지만 완성된 지도는 아니다. 오늘날에는 국가뿐 아니라 거대 플랫폼과 AI 제공자가 데이터, 모델, 추천, 설득의 인프라를 장악한다. 1990년의 국가-기업 구분만으로 이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말년 들뢰즈를 현재에 연결할 때에는 “그가 이미 예언했다”보다 다음 질문이 중요하다. -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고 누가 측정할 수 있는가. - 유연성과 개인화가 능력의 확장인지 통제의 정교화인지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 계산과 평가에서 빠져나가는 공간을 실제 제도로 만들 수 있는가. - 새로운 집합적 주체가 생기더라도 다시 플랫폼과 시장에 포획되지 않을 조건은 무엇인가. ## 관련 문서 - [차이, 문제, 역사](./deleuze-negation-history.md) - [들뢰즈: 생성과 새로운 것의 철학](./deleuze-becoming-new.md) - [들뢰즈 이후의 사상가들](./post-deleuze-novelty-thinkers.md) -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철학과 합리성](./contemporary-governing-philosophies.md) - [AI와 민주주의의 좁은 회랑](./ai-democracy-narrow-corridor.md) ## 검토 상태 연대, 발언, 작품 제목은 현재 접근 가능한 논의에서 이미 확인된 범위를 사용했다. 『마르크스의 위대함』의 예상 내용과 말년 미래관의 종합은 해석이며, 이번 편집에서 외부 자료를 새로 조사하지 않았다.